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 회장(사진= 중국 바이두)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 회장(사진= 중국 바이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은 인터넷 시대에 가장 성공한 경영인이다. 그는 2015년 1월 17일, 시다닷컴의 웨이보에 대학시절 바둑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가 세계대회 선수권자인 마샤오춘과 같은 고향사람이며, 같은 마(馬)씨 성의 동갑내기라는 것을 알았다. 

마윈이 바둑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3학년때다. 마윈은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SNS)에 바둑을 배우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기숙사에서 한 친구가 그에게 바둑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에게 매번 5점을 두고 뒀지만 매번 대패했다. 그 친구는 “졸업 전에 5점을 놓고 나를 이기면 고기 다섯 덩어리를 줄께”라고 말했다. 그때는 가난해서 내가 한달에 두 번 정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형편이었다. 3개월 후 나는 호선으로 그를 이길 수 있게 됐으며, 또 3개월이 지나서 오히려 그가 나에게 넉점을 깔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포스팅했다.

마윈은 “기력은 아주 빨리 올라갔다. 항저우사범대학 외국어학과에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에 진정한 고수와 대국을 하고 나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는 바둑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포석전략, 중반전투, 끝내기 등의 과정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비록 마윈은 자신이 바둑천재가 아니라고 인정했지만 그의 이 발언을 통해 바둑이 그의 생활과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심지어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언제나 바둑적 사고방식은 언제나 머리 속에 있었다.

1999년 마윈이 자신의 철밥통을 깨뜨리고 베이징을 떠나 항저우로 돌아가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2015년 1월 26일 '베이징만보(北京晚报)'는 마윈이 베이징을 떠날 때 바둑판과 알을 챙겨서 떠났는데 이것이 그의 유일한 이사짐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후 기업인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쳐 중국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마윈은 바둑을 놓지않았다. 2017년 5월, 중국랭킹 1위 커제와 알파고가 두번째 세기의 대결을 펼쳐 0-3으로 패하자 마윈은 즉시 웨이보에 자신의 시각에서 평론을 내놨다. 그는 "세기의 대결은 의미가 없다. 바둑에는 상대가 잘못 두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이기는 등 다양한 여러가지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상대가 인공지능이라면 결코 잘못 두지 않을 것이며, 인공지능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계산도 사람이 3수 앞을 내다볼 때 300수를 내다보며, 영원히 잘못 두지 않는다”말했다. 이어 그는 분노섞인 말투로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가장 즐기는 것들을 빼앗아 가버리고 우리를 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은 대학시절 한 때 바둑을 좋아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5~6세 아이에게 패한 후 10여년 바둑을 두지 않았다. 

마윈은 대학시절 바둑에 관한 일화를 떠올리며 웨이보에 글을 올렸다. 대학교 3학년 때, 기숙사의 한 친구에게 처음 바둑을 배웠는데 9점을 놓고 매번 졌다. 한번은 그가 “졸업하기 전에 5점 놓고 나를 이기면 고기를 실컷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가난한 시절이라 한달에 두 번 정도 고기를 먹을 수 있던 때였다. 
3개월이 지난 후 나는 그와 맞수가 되었고, 또 3개월이 지난 후에는 오히려 내가 넉점을 접어주고 그를 이기는 상황이 됐다. 고기를 사준다는 유혹이 외국어학과 학생 중 가장 바둑을 잘 두는 마윈으로 만들었다. 

하루는 여동생의 남자친구(지금의 매부)가 자신의 수학선생님의 바둑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서호구(西湖区)아마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갔다. 그날 저녁 세차게 비가 내렸지만 나는 고물 자전거를 빌려서 학교에서 6시경 출발했다. 가는 도중 3차례 체인이 풀려 저녁 9시반이 넘어서야 교외의 외진 선생님 댁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자전거 수리할 때 뭍은 기름때와 비로 흠뻑 젖은 나를 보고는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선생님, 선생님과 바둑을 두러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감동한 듯 마윈을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마윈, 나랑 바둑을 두겠는가 아니면 내 큰 아들 혹은 작은 아들하고 두겠는가?”라고 말했다. 마윈이 그 연유를 묻자 선생님은 “나는 서호구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큰 아들이 나를 두점 접어주고, 작은 아들은 큰 아들에게 2점을 접고 둔다”라고 말했다. 
마윈은 먼저 선생님과 두었는데 몇 수가 진행되고 12세의 큰 아들이 2분 정도 보더니 웃으면서 “재미있게 두세요, 저는 자러 갈께요”라고 말했다.
20분 후 선생님은 마윈에게 “하하, 우리 다시 둘까? 넉 점 정도 놔야겠는데”라고 말했다. 이후 6점은 놓고도 선생님한테 모두 졌고 큰 망신을 당했다. 마윈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게 기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바둑에 숨어있는 전략, 전술, 중반전투, 끝내기의 매력을 느꼈다. 

마윈은 기차, 비행기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한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로봇과 누가 더 똑똑한가를 논할 필요가 없다. 로봇은 인류가 할 수 없는 일을 완성하는데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마윈이 또다른 시각에서 바둑적 사고를 설명한 것이기도 하며, 바둑에 대한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사고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마윈은 인류와 바둑의 본질 관계를 언급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지혜각축과 사유차원의 도전의 즐거움인 것이다.

이 때문에 마윈은 “미래 아이들은 더욱 금기서화(琴棋书画)를 공부해야 한다. 억지로 외우고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경쟁하는 사회 속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바둑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화려하게 창업하기까지 마윈은 인생에서 그의 선택을 했고, 의심할 여지없이 성공했다. 그가 이룬 성공의 배후에는 도대체 바둑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그가 성공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기에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식견과 시야가 좁아 전반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우연히 얻은 바둑적 사고능력이 마윈의 삶과 사업에 융합되어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유전자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바둑에서 쾌락을 찾고, 대국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깨달음을 얻는다. 알리바바와 함께 묵묵히 앞으로 나가는 것은 마윈 말고도 바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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